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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s/Samsung etc.2010.02.19 16:08

 

삼성이 ‘무죄’인 이유 [2010.01.29 제796호]
책으로 양심선언 사건 정리한 김용철 변호사… 감춰진 ‘황제경영’과 전략기획실의 전횡 다뤄
정혁준
» 김용철 변호사
지난 1월27일 아침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과 관련한 책을 내는 걸 아는가? 혹시, 원고를 갖고 있으면 원고를 보내줄 수 있나? 이미 삼성 쪽에서 원고를 확보해 명예훼손이 되는 게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던데….”

 

기자에겐 원고가 없었다. 단지 이날 김용철 변호사와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을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삼성이 역시 빠르구나. 삼성이 여전히 김 변호사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삼성에 “책 원고를 갖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삼성 쪽은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사실 <한겨레21>은 몇 달 전부터 김용철 변호사가 책을 낸다는 소문을 접한 뒤, 김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하지만 그는 “책을 낼 생각은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 중단한 상태”라고만 말해왔다. 하지만 인터뷰 사흘 전 김 변호사한테서 책을 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왜 책을 안 낸다고 했느냐”고 은근슬쩍 따져물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책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안 하고 싶었다. 책이 나온 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걱정되기도 했다. 아직 완결이 안 됐는데 여기저기서 쓸데없는 방해가 들어올 것 같아서 그랬다”라는 말로 넘겼다.

 

김 변호사의 책 제목은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다. ‘변호사 김용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장장 500여 쪽에 이른다.

 

책은 3부로 짜여 있다. 1부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에는 2007년 10월 김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문제를 양심 고백하는 긴박한 상황과, 특검이 꾸려지고 1년 넘게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비자금 수사와 대부분 무죄로 허무하게 끝나는 재판 과정이 촘촘히 기록돼 있다. 2부 ‘그들만의 세상’은 삼성에 관한 얘기다. 삼성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국내 주요 인사에 대한 삼성의 로비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삼성에버랜드 편법 상속 과정은 어떠했고, 대선 비자금 문제는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다뤘다.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보통 사람과 다른 이건희 전 삼성 회장 가족의 비화가 녹아 있다. 마지막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에는 김 변호사가 특수부 검사로 있을 때의 여러 에피소드와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일화 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김 변호사가 삼성과 한국 사회에 던지는 제안이 들어가 있다.

 

- 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 2008년 1월 조준웅 삼성 특검팀이 출범했다. 하지만 특검 수사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삼성 비자금 문제를 어떤 형식이로든 정리해야 한다는 권고를 들었다. 2008년 중순부터 책 만드는 작업을 했다.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와 가신들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일부를 검찰과 언론 등 국가와 사회 여러 분야에 뿌려 공적 기능을 무력화했다. 대부분의 비자금은 이 전 회장의 영속불변의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 이게 삼성 비자금 사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대부분이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물론 일부 조세포탈과 배임에 대해선 유죄가 확정됐지만, 이마저도 4개월여 만에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정사의 기록은 이렇게 끝났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소설가 이병주는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검찰과 법정, 언론에 말한 진실은 역사도 신화도 아닌 야사로만 전해지게 됐다. 나는 달을 가리켰지만 사람들은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내 손가락만 못생겼다고 욕했다. 내가 말한 기록이 야사로 남더라도 어떻게든 정리해서 진실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

= 처음엔 ‘삼성은 무죄다’라는 제목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냉소적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변호사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삼성이나 검찰이 들어가는 중립적인 이름도 생각해봤다. 결국 출판사와 논의한 뒤 ‘삼성을 생각한다’로 지었다.

 

- 책에 나오는 인물은 실명인가, 가명인가.

= 주요 인물들은 공익적인 차원에서 모두 실명 처리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은 모두 실명을 썼다. 이재용 부사장, 이부진 전무, 조준웅 특별검사 등도 모두 실명으로 나온다. 하지만 연예인 매춘 사건과 연루된 임원 얘기 등은 프라이버시를 생각했고 공익과는 거리가 있어 ‘~한 임원’ 등으로 처리했다.

 

- 삼성 비자금과 관련한 책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텐데.

= 개인적으로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다.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어서 표나 인기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시비에 오르고 구설에도 시달릴 만큼 시달렸다. 어떤 누구도 나를 봐주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한 번은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물론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에겐 여전히 미안하다.

 

- 책에는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도 나오나.

= 보통 사람과 다른 이건희 전 회장의 얘기가 들어 있다. 예를 들면, 돈으로도 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가수 나훈아가 그랬다. 이건희 전 회장의 생일잔치 때, 유명 성악가와 인기 아나운서가 나와 이 전 회장 집에서 공연을 열었다. 하지만 나훈아는 못 온다고 했다. 대중예술가는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해야지 개인 앞에서는 공연하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훈아를 다시 보게 됐다.

 

생일날에도 이 전 회장은 달랐다. 손님들에겐 냉동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가 나왔으나, 이 전 회장 부부에게는 냉장 푸아그라가 나오더라. 이 전 회장은 1천만원짜리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 전 회장 집에 1층과 지하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놀라웠다. 장롱은 유명 명인이 만들었고, 어떤 방에는 골프채가 그득했다. 이런 에피소드가 들어간 건, ‘황제경영’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 그 밖에 어떤 얘기가 나오나.

= 무소불위의 전략기획실 얘기다. 난다 긴다 하는 임원들도 전략기획실 앞에선 꾸벅 죽는다. “여기 (전략기획)실입니다”라는 전략기획실 과장의 전화를 임원들은 거의 부동자세로 받는다. 삼성 전략기획실과 청와대 비서실 중 과연 어디가 더 셀 것 같나. 비교가 안 된다. 삼성 전략기획실의 파워가 청와대 비서실을 능가한다. 물론 나 역시 삼성에 있을 때 삼성화재와 삼성전자에 이름을 걸쳐두고 있었지만 그 회사를 위해 일한 적은 없었다. 오로지 이 전 회장을 위해 일했다.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삼성에선 서비스 사장 하다 제조업체 사장 한다. 전문성은 전혀 상관없다. 이 전 회장에게 충성만 잘하면 승진한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제대로 된 경영자 하나 키우지 못한다. 이 전 회장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 잭 웰치 같은 뛰어난 경영자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 일부 사람들은 김 변호사가 삼성한테 혜택을 받고 나온 뒤 삼성을 욕하는 배신자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살인이 의거가 되고, 대량학살이 위대한 정복이 된다. 삼성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를 배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 사람들이 나를 배신자로 손가락질하는 것은, 상당 부분 삼성에서 흘린 음해 공작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인들은 나에 대한 온갖 음해를 책에서 해명하거나 반박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책에서 적극적인 변명은 하지 않았다. 사적인 문제를 공적인 책에서 변명하기 싫었다. 다만 7년 동안 삼성이 주장하는 돈(100억원)의 반이 안 되는 돈을 급여로 받아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기부·친족 지원 등으로 대부분 쓴 것은 사실이다. 이건 책에서 설명했다. 수입의 범위 안에서 소비한 게 사치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굳이 사치라는 단어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더 나은 소비 방법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을 받았으니, 면책을 받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 주로 그런 주장을 펴는 쪽은 자신들을 보수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병역을 기피하는 보수가 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와 반부패의 문제다.

 

- 글로벌 기업 삼성에 대한 비판은 결국 삼성의 국제적인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 삼성전자는 석·박사만 3천 명이 넘고,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삼성그룹은 잘돼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듯, 삼성이 이건희 전 회장의 소유는 아니다. 이 전 회장은 소수의 지분으로 삼성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삼성에 대한 나의 비판은 삼성 최고경영진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삼성 직원은 성실히 일하고 있다.

 

- 검찰과 관련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고 들었다.

= 삼성 특검이 꾸려지기 전 검찰이 만든 특별수사·감찰본부에서 내가 부장검사에게 가방을 던져 버렸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나와 그 부장 검사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수사를 받으면서 느낀 건, 검찰이 수사를 안 하려고 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구역질 날 정도로 기가 막혔다.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와 우리나라 검찰을 비교해보자. 도쿄지검 특수부는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을 수사 중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댄다. 하지만 우리나라 검찰은 죽은 권력에 대해서만 칼을 들이댄다. 이명박 정부의 친인척이나 삼성엔 손도 못 댄다. 물론 검사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들에게 혁명가가 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검찰 조직이 돼야 하지 않겠나.

 

- 이번 책과 관련해 삼성에서 명예훼손 건으로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 신경은 쓰이지만 감수해야 하는 일 아니겠나. 재판을 걸어온다면 지저분한 싸움이지만 응해야지 어쩔 수 있나. 이 전 회장은 사면된 마당에 나는 거꾸로 시달리는 상황이 되겠지, 뭐. 한심한 상황일 수 있는데, 내 몫인데 어떡하겠나.

 

-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자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사회가 막장은 아니지 않나. 후손에게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제발 삼성 비자금 문제를 진보와 보수 대결로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패 대 반부패라는 시각이 옳다.

 

김 변호사는 인터뷰 틈틈이 아이폰으로 전자우편을 확인했다. 50대인데 아이폰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경기 부천에서 운영하는 빵가게로 달려갔다.

승자의 기록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역사로 남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에 바래져 신화가 되기도 한다. 그가 남기려는 기록은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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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2-24 오후 6:47:28

 

 

 

 

Posted by 잠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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