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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Disharmony2012.04.15 12:41

“MB, 사찰보고서 밤새워 읽을 정도로 좋아해”

등록 : 2012.04.14 15:35수정 : 2012.04.14 15:37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회의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원관실 이전에도 ‘영포라인’ 비선 불법사찰해 ‘정적 제거용’ 활용 가능성
“밤새우다시피 읽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증언 나오는 대통령이 근본 원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을 비롯해 국가정보원, 경찰 등은 왜 초법적인 민간인 불법사찰을 자행한 것일까? ‘BH(청와대) 하명’ ‘VIP(대통령) 걱정’ 등의 표현이 곳곳에 등장하는 걸 보면, 불법사찰과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지원관실은 과거 정부에서 ‘조사심의관실’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것을,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했다가 2008년 7월 부활시킨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인 2004년 9월 서울시 감사반에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를 ‘수색’당한 적이 있다. 공직 감찰을 담당하는 조사심의관실이 ‘이 시장이 추석을 앞두고 선물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서울시 감사반에 통보한 것이다. 이런 과거사 때문에, 조사심의관실이 이 정부 들어 폐지된 것은 이 대통령의 불쾌감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조사심의관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 촛불집회 이후 지원관실로 되살아났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얘기는 좀더 구체적이다.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 해도 이 대통령으로선 난생처음 보는 것이라 매우 좋아했다. ‘영포 라인’은 이런 불법사찰 보고서로 이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

 

 

당선 직후부터 사찰, 곳곳에서 발견

 

그렇다면 지원관실이 설치되기 전까지는 이명박 정부에서 불법사찰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게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정태근 의원(무소속) 사찰이다. 2008년 4월께 두 사람을 사찰한 이는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밑에서 일하던 이창화 전 행정관이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공천 반납 요구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두 정 의원은 이 전 행정관한테 사찰을 당했고, 이를 알아차린 정두언 의원이 이 의원에게 항의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성헌 새누리당 의원 등을 이 전 행정관이 사찰했다고 의심받는 시기도 이 무렵이다.

 

국가정보원 출신인 이 전 행정관은 비슷한 시기에 김성호 전 국정원장,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의 부인 등을 사찰했다는 의혹도 샀다. 2010년 11월 이석현 당시 민주당 의원은 이런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전 행정관이 지원관실 출범 뒤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인사는 “대선에서 500만 표 차이로 당선된 이 대통령은 매우 자신감에 넘쳤는데, 촛불로 휘청이게 됐다. 그런데 검찰·경찰·국정원 모두 손을 못 썼다. 정권 핵심들은 특히 김성호 국정원장에게 불만이 높았다. 그 틈에 게슈타포 같은 ‘영포 라인’(경북 영일·포항 출신 인사)이 반대파를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정권 안위를 위해 지원관실 같은 별동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 무렵 이 대통령의 측근 ㄱ씨도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2008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는데, 여권의 일부 인사들이 그를 청와대에 기용하자고 추천하자 이 대통령이 “그렇게 문제 많은 사람을 왜 쓰라고 하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알고 보니 선거 때 상대 쪽에서 음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박영준 라인’ 쪽에서 뒷조사를 했고, 대통령에게 악의적으로 허위 보고를 했더라”며 “결국 대통령이 ㄱ씨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인사는 “지원관실이 생기기 전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도 사찰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공직기강팀장은 현재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5천만원을 전달한 의혹을 받는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그 역시 박영준 당시 기조비서관과 가깝다.

 

 

보고 라인 무시해도 MB “그냥 놔두라”

 

불법사찰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누구에게 최종 보고됐고,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다. 앞의 이 대통령 측근 사례는, 사찰 정보가 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사실상의 ‘인사 자료’이자 ‘정적 제거용’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염두에 둔 인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권한이 없는 기관이나 개인이 이런 정보를 불법사찰을 통해 수집하고 이 대통령이 이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한 지원관실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들과 가까운 박영준 전 비서관 등이 이 대통령에게 직보를 했다는 의혹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좀 과장하면 이 대통령은 불법사찰 보고서를 밤을 새우다시피 읽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얘기는 좀더 구체적이다. “‘찌라시’ 수준의 보고서라 해도 이 대통령으로선 난생처음 보는 것이라 매우 좋아했다. 영포 라인은 이런 불법사찰 보고서로 이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 ‘국정원도 말 안 듣고, 사직동팀도 없으니 통치권을 탄탄히 지키기 위해 우리 포항이 나서겠다’며 불법사찰을 하고, 지원관실을 이용해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했다.” 이 대통령이 좋아하니 불법을 저지르며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해 전횡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사찰이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정식 보고 라인을 무시한 채 보고가 이뤄지는 것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009년 10월께 등 두 차례 이 대통령에게 문제제기를 했다. 직제상 지원관실의 보고 라인은 민정수석실인데, 고용노사비서관실이 이 조직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냥 놔두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지원관실의 보고 라인에 민정수석실이 ‘추가’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조처는 없었다.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 역시 이 대통령에게 지원관실 ‘정상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장, 기무사령관 독대 보고도 부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정원장과 기무사령관의 독대 보고를 폐지했다. 밀실정치 논란의 뿌리를 없애고, 이 기관들을 국내 정치로부터 독립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만들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두 기관장의 독대 보고를 부활시켰다. 특히 국정원의 경우엔 전문성이 없는데도 측근인 원세훈 원장을 임명해 직접 챙겼다. 그 결과는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다. 기무사 역시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현장에서 민주노동당 당직자 등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태근 의원은 4월2일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하에서 불법사찰의 본질은 ‘국정을 농단한 특정 세력의 권력 사유화’이고, 이를 방치한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혁명이론가 토머스 페인의 저서 <상식>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정부는 최고의 것이라도 필요악일 따름이다. 최악은 참을 수 없는 정부다. 정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을 경우 우리는 차라리 정부가 없는 나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수단을 우리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불행은 더욱 커진다.”

 

 

조혜정 기자 @hani.co.krzesty@hani.co.kr

 

 

 

 

‘PD수첩’ 사찰 보도뒤…민정수석실 휴대전화 불났다

등록 : 2012.04.17 08:20 수정 : 2012.04.17 08:21

 

 

방송보도뒤 20차례…하드 삭제뒤 5차례
민정수석실 당사자들 검찰소환도 안받아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범죄행위에 나섰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은 2010년 7월초 ‘증거인멸’이라는 또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한 청와대 ‘비선’ 라인은 이를 교사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사정기관 지휘·조율 업무를 맡고 있는 민정수석실은 당시 무슨 역할을 했을까?

 

16일 <한겨레>가 입수·분석한 통화 목록은 민정수석실 역시 증거인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지원관실 점검1팀 직원들의 세부 통화내역을 보면, 민정수석실과 지원관실 사이의 통화는 수시로 이뤄졌다. 이들의 통화는 2010년 6월28일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보도한 직후부터 시작된다. 민정수석실의 업무용 휴대전화인 ‘017-770-○○○○’으로 6월29일 오전 8시48분에 처음 걸려온 전화는 이튿날인 30일 오후 4시40분까지 7차례 반복됐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 김덕수 전 선임행정관도 6월30일부터 지원관실 직원들과 20차례에 걸쳐 이어진 통화를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지원관실은 <피디수첩> 보도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지원관실은 결국 7월2일 ‘대책 문건’을 만들어 “권택기 한나라당 의원에게 김종익 전 케이비(KB)한마음 대표의 비리 의혹을 통보해 의혹을 제기해 김씨 지원 세력의 예봉을 꺾는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은 김 대표의 비리 의혹을 문건으로 정리해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전달했다. 지원관실이 정부·여당을 ‘조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의 사전 조율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 등이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이레이저’ 프로그램으로 갈아엎었던 7월5일에도 민정수석실은 긴밀하게 움직였다. 이날 김 전 선임행정관은 지원관실 직원 2명과 세 차례 통화했고,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도 진 전 과장과 두 차례 통화했다. 장 비서관은 애초 장 전 주무관이 “장 비서관이 마련한 5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건이 불거진 초기부터 지원관실 직원들과 통화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차 증거인멸 과정에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거짓 해명을 했다는 추론도 가능한 지점이다.

 

지원관실 직원들과 통화한 민정수석실 직원들의 인적 구성도 의구심을 더한다. 사건 연루자들과 11일 동안 20차례 통화한 김 전 선임행정관은 청와대 내부 ‘영포라인’으로, 김충곤 지원관실 점검1팀장과 함께 ‘구룡포 재경향우회’ 임원을 맡아왔다. 또 통화 기록이 남아 있는 김두진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1팀장 역시 선임행정관을 거쳐 친인척 관리라는 핵심 사찰 업무를 맡고 있었다. 고용노사비서관실의 ‘비선라인’을 통해 벌어진 청와대 차원의 범죄를 덮기 위해 민정수석실에서도 ‘핵심’이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가운데 진 전 과장이 중앙징계위원회에 낸 서면진술서의 내용도 민정수석실의 이런 ‘역할’을 뒷받침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과장의 주장이 맞다면,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지원관실의 증거인멸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검찰에 소환되거나 진술서 한장 내지 않았다. 검찰의 1차 수사는 이들을 완벽하게 비켜간 셈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모두 의혹을 부인했다. 장 비서관은 “지원관실 직원들이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고, 김 팀장은 “통화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선임행정관은 “청와대에 근무한 적이 없다”며 “당시 통화를 했다면 향우회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송경화 안창현 기자 goloke@hani.co.kr

 

 

 

Posted by 잠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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